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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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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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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회 `축구전쟁` 의 전말을 들은 이원희~

  • 작성일 2019-02-08 오전 12:29:00 |
  • 조회 116
 
잠시 후, 어느 카페에서 신이치와 만난 이원희는 자신이 궁금해하던 의문점을 재촉하였는데...??

“축구의 역사라구? 그건 또 왜?”
“아주 중요한 거예요.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야 어려울 게 없지만... 이게 대체 무슨 사건에 단서가 된다는 건지...”

신이치는 이원희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지만, 이미 자신의 차원을 수십 배 뛰어넘고 있는 이원희의 추리력과 지혜를 알고 있는지라 마지못해 자신이 알고 있는 축구지식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좋아. 그렇다면 어떤 축구지식에 대해 알고 싶나?”
“먼저 그렇다면... [축구전쟁]이란 것에 대해 좀 알려주세요.”

이원희는 이번 연쇄 살인사건의 얼기설기 얽힌 고리를 풀 단서를 얻기 위해, 축구광인 신이치에게 세계 축구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거대한 사건이었던 [축구전쟁]에 대해 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축구전쟁이라... 음, 좋아!”

그는 이원희의 사정을 듣고서, 자신이 알고 있는 축구전쟁의 역사를 가르쳐주었는데...
신이치가 알려준 1969년의 비극, [축구전쟁]의 역사는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970년에 열린 제 9회 월드컵은 멕시코에서 벌어졌는데, 이 대회 전 해에는 이 월드컵 경기 때문에 급기야 전쟁마저 벌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축구전쟁]이라고 하여, 지나친 스포츠의 열정이 낳은 비극이었다.
이 일이 어떻게 벌어지게 되었나 하면, 월드컵 본선에 나갈 대표팀을 뽑는 대륙간 중남미 예선에서 빚어진 불상사 때문이었다.
2차 대전 전까지 벌어진 대회에서는 워낙 참가국 수가 적어서, 굳이 지역예선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지만 대전이 끝나고 1950년부터 벌어진 4회 대회부터는 출전국 수가 30개국을 넘게 되어, 토너먼트 방식으로는 본선 경기가 너무 많아 할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지역예선이 생기게 되었고, 점차 참가국이 늘어감에 따라 경쟁률이 높아졌다. 따라서, 1970년경에는 북중미에서도 예선전을 미리 치른 후, 단 1개국만이 본선 토너먼트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1장뿐인 티켓을 쟁탈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1969년... 내년에 벌어질 본선 경기를 앞두고는 북중미 지역예선이 벌어졌다.
여기 참가했던 팀은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파나마, 코스타리카 총 6개국이었다.
결국, 다른 팀들은 전부 예선 토너먼트에서 떨어져 나가고, 이 중에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만이 남아 최종결선을 벌이게 되었다.
이 마지막 지역결선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두 판을 싸워 결정을 했는데, 만약 이 두 판에서 1승 1패가 되는 경우엔 3국에서 최종전을 치뤄 승패를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실제 이런 경우가 벌어지고 말았다. 1969년 초여름의 지역예선... 1차전은 온두라스에서 벌어져 온두라스가 1:0으로 승리했고, 2차전은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에서 벌어져 3:0으로 엘살바도르가 이겼다.
이렇게 되자, 먼저 첫 승을 올렸으면서도 다음 판에 대패하여 억울하게 본선 진출권을 놓친 온두라스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엘살바도르가 이 날 대승한 원인이 엘살바도르에 원정 와 있던 온두라스 축구선수단이 일부러 연습을 하지 못하게 엘살바도르 정부가 연습장을 제공하지 않는 등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많은 텃세를 하고, 거기에 시합 전날 온두라스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엘살바도르 훌리건들이 깡통과 북을 두들기면서 선수들이 잠을 못 자게 해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이미 본국에 알려졌기 때문에, 온두라스 시민들이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 것은 이 날 엘살바도르에 원정 왔던 온두라스 응원단이 엘살바도르 응원단에 맞아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사실이었다.
이런 일들 때문에, 급기야 온두라스 인들은 급작스레 자국 내에 있던 엘살바도르인들의 농장과 가게를 마구 습격하여 테러와 약탈을 일삼았다. 보복성 테러였다.
당시 온두라스에는 많은 엘살바도르 인들이 상업이나 농업 문제로 온두라스 영내에 이주해 살고 있었다. 소국인 온두라스의 경제권을 엘살바도르 인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초 외국인인 엘살바도르 인들이 자국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게 여기던 온두라스 인들은 이 기회에 짓눌러 왔던 민족감정이 폭발했는지, 월드컵 예선전의 보복성 공격으로 쌓여온 울분을 토해냈던 것이다.
그들은 마구 엘살바도르 인들의 상점에 불을 지르고, 말을 타고는 농장에 뛰어들어 농작물을 약탈하고 짓밟았다.
이로 인해, 엘살바도르인들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3천만 불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났다. 또한, 온두라스 정부는 일전 월드컵 예선전 경기 때 엘살바도르 정부가 교묘한 비신사적 행위로 자국 축구단의 연습을 못하게 해 참패당하게 한 사실을 알고서 격분한 나머지, 국민들과 보조를 맞춰 엘살바도르와의 무역을 금지했다.
엘살바도르는 이런 자국민 테러와 재산피해에 나름대로 또한 격분한 나머지, 6월 23일에 온두라스와 국교를 단절하였다.
두 나라는 국교를 끊은 지 불과 4일 후인 27일 날 원래 약속대로 멕시코시티에서 최종전을 가졌으나, 연장전까지 들어가는 접전 끝에 급기야 충분히 부정이라는 의혹이 있을 듯한 曖昧模糊(애매모호)한 골로서 엘살바도르가 승리하고 말았다.
이 날은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관중보다 군경이 더 많았다. 험악한 분위기에서 이런 누가 보아도 쉽게 납득이 안 가는 승부가 나면, 양쪽 관중이나 선수들이 서로 난투극을 벌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철통같은 경비 탓에 비록 여기서는 난투극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끝까지 의혹이 많은 골로서 엘살바도르가 승리하자 온두라스는 나름대로 진출권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고는 또 다시 자국 내에 있는 엘살바도르 인들에게 대한 무차별 테러를 시작하였고, 온두라스 정부는 이를 묵인하였다.
그러자, 도저히 자국민에 대한 테러를 묵인할 수 없던 엘살바도르 정부는 급기야 20일이 지난 7월 13일 포병부대를 앞세워 온두라스 국토를 침범하고는 온두라스에 선전포고하였다.
엘살바도르의 기갑부대가 온두라스 서쪽 도시 엘포이를 점령하고, 공군기들은 온두라스의 남서부를 마구 폭격하였다. 온두라스도 금방 반격을 개시하여, 육해공군이 총출동한 전면전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벌어진 4일간의 치열한 공방전에서,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났으며 온두라스의 도시 몇 개가 초토화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전쟁은 미국이 의장국이 된 미주기구(OAS)와 유엔이 나서 가까스로 닷새만에 진정되었다. 원래 이해관계가 아닌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시작된 전쟁이었으니 만큼, 이만한 피해가 나자 양쪽 어느 누구도 더 이상의 확전은 바라지 않고 미주기구와 유엔의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것이 1969년에 축구로 인해, 세계최초로 벌어졌던 [축구전쟁]의 전말이었다.

이 축구전쟁이 주는 역사의 교훈은, 스포츠가 단순한 오락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체육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선전용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엔 삐뚤게 나가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로 나타나는지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휴.., 수십 년 전에 이런 무서운 일이 있었다니... 한낱 스포츠 때문에 전쟁까지 일어나다니,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실제 일어났었다니 놀랍군요.”
“그렇지... 사실 이번 한일 월드컵이 공동개최 월드컵이라기보다는, 경쟁개최 월드컵이라는 일본이나 한국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의 비아냥도 있어. 이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처럼 숙명의 라이벌끼리 얼마나 각기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느냐는 경쟁심리의 월드컵 말이야...”
“휴. 세계인들이 한국일본 사이를 그렇게 보고 있다니 어째 슬프군요... 우릴 대결상대로 보고 있다니... 그나마 몇 되지도 않는 아시아 선진국을 서로 반목하는 사이로 알다니...”
“하긴 무리도 아니지 뭐. 우리 일본이 과거 35년간이나 노예로 혹사한 일이 있고, 한국도 그로 인해 일본에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진 건 아니니까...”

한국계 일본인인 이원희는 어쩐지 두 나라 사이의 좋지 못한 감정에 대해, 씁쓸한 감정을 느끼면서 입맛을 다셨다. 지금 그녀의 마음은, 서로 미워하고 있는 부모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자녀의 심정 같았던 것이다.

축구전쟁의 역사를 듣고서, 한국일본간의 관계를 알고 어쩐지 미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이원희의 주의를 다시 환기시킨 것은 바로 신이치의 돌연스러운 이런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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