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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3제국 총통의 마지막 회상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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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3제국 총통의 마지막 회상[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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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작작가 지음 | 일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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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히틀러의 마지막

  • 작성일 2015-11-18 오후 7:43:00 |
  • 조회 1147

이제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포성이 급기야 며칠 전부턴 바로 코앞에서 땅을 징징 울리면서 들려오고 있다...!!

오늘로 4월도 급기야 마지막 날... 누군가 말했던가? 4월은 잔인하다고...

나에게도 4월 이 마지막 날이 잔인한 날이 되어 버린 것이다.

파킨슨병으로 급기야 수전증까지 와서 덜덜 떨리는 손... 나는 급기야 책상 서랍 안에 있던 피스톨 한자루를 꺼내들면서 마지막 손아귀 힘을 주기 시작한다...

마지막 인생의 한순간...!! 이제 생각해보니 모든 인생의 줄거리가 꼭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나의 머릿속 기억의 필름화면이...!!



내 고향인 로렐라이의 고향에 가까운 브라스나우...

나는 세관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결코 자애로운 아버지가 아니었던 듯 싶다. 내 어머니는 아버지의 5촌 질녀 뻘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동거하게 되어 나를 낳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무척 소질이 있어 풍경화를 특히 잘 그렸는데, 어머니는 날 화가로 키우고 싶어하셨다. 고흐나 밀레 못지 않은 화가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툭하면 날 그림을 못 그리게 하고 내 도화지를 찢어버리고 물감을 버리는 등 온갖 심술을 부렸다.

“임마, 굶어죽기 딱 알맞은 직업이 바로 화가다!!~ 넌 나처럼 세관공무원이나 군인이 되어야 한다. 밀레나 고호도 살아생전 빵 한끼 배불리 먹은 적 없어. 그런 인생 살테냐?”

아버진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도박과 술을 무척 좋아했다. 나름대로는 보직이라고 할 수 있고, 봉급도 많은 데다 부수입(세관공무원이라 부정도 많이 해서?)도 짭짤한 아버지가 맨날 거의 빈털터리였던 이유도 바로 거기 있었다.

아이고, 난 저런 위선자 아버지는 절대 본받지 말아야겠다고 항상 다짐도 많이 했다.

아버지가 그런 무절제한 사람이어서일까? 아버진 내가 막 소년이 된 어떤 시기에 픽 쓰러져 돌아가시고 말았다. 계단에서 갑자기 픽 쓰러져 굴렀는데, 어머니가 그 소음을 듣고 달려가 아버질 부축하고 내가 멀리까지 뛰어가 의사선생님을 불러왔을 땐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불러온 의사선생님 진단으론, 이미 그때 계단에서 구르기 전에 즉사한 상태였고 제때 불러왔어도 벌써 죽어있었을 거라고 한다. 아버지의 사인은 심장마비(현대어론 심근경색)이었다고 알려주었다...


엄격하고 가혹한 성격의 아버지는 이렇게 돌아가시고, 인자하시지만 별다른 재산도 기술도 없는 어머니만 남자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이젠 내가 화가가 되겠다는 걸 막을 사람도 없고, 난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태 후에 빈의 미술학교에 올라가 입학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담당시험을 본 심사위원들이 [풍경화나 건물화는 잘 그리는데, 인물이나 생물화는 전혀 수준미만(생동감이 없다며)] 이란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화가가 되는 길에서 고배를 마신 나는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번엔 어머니가 날더러 [목사]가 되어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성직자의 길...? 나도 한때 그 말에 혹해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결국 1년도 안되어 그것도 그만 두고 말았다.

너무나 엄격한 일과와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일하라는 조금치의 개인생활이 없는 그런 생활은 견디기 힘들었다. 더구나, 신학교의 학생들이란 게 말로만 성인군자인 척 하지, 실제 신학교의 교복을 벗고 바깥에 나가면 술과 계집 도박 등에 절어서 온갖 추잡한 행동만 해대는 건 오히려 일반 학생들보다 더했다... 그런 위선의 교육기관에서 오래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결국 1년도 안되어 신학교를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니, 신학교를 그만 둔 건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갑자기 건강하시던 우리 어머니가 병들어 생사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전보가 와서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의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닌 내가 돌아온지 몇 달 안되어 돌아가셨다. 암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암은 지금 21세기 기술로도 완치가 어렵다.)

어머니를 마을 교회 공동묘지에 묻고 오던 날... 하늘도 슬퍼하는지 무척 날씨는 궃고 벼락까지 치고 있었다.

난 이제 고향을 떠나 이웃 독일로 가기로 했다. 이런 약소국인 오스트리아보단, 같은 민족국가인 강대국 독일로 가면 뭔가 크게 출세할 기회라도 생길 듯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독일로 들어왔다. 당시엔 국경이 같은 민족끼린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이주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얌체국가는 국민 개개인에게 빨아먹을 건 다 빨아먹겠다는 심본지 독일로 이주한 지 얼마 안되어 나에게 [징집영장]이 본국 오스트리아부터 왔다.

짜증이 났다. 국가란 놈이 나에게 해준 게 뭐라고, 평생토록 궁핍과 가난밖에 준 게 없는 주제에 나같은 평민에게만 국방의 의무를 떠넘기다니...

나는 간장을 잔뜩 먹어 혈당을 높이고, 일부러 밥조차 나흘 가까이 굶어 영양실조로 가장해서 오스트리아 징병검사에서 불합격되었다.

하지만, 병역면제되고 나서 얼마 안되어 ‘세계대전’ 이 터졌다...

그때, 독일사람들은 그게 무슨 축제라도 되는 양 거리로 뛰쳐나와 [독일의 힘을 세계만방에 떨칠 기회가 왔다]고 미친 개가 짖는 것처럼 환호하였다. 정말 미친 놈들... 죽는 게 무슨 기쁜 일이라고 저럴까? 마조히스트인가??

나는 그때, 세계대전이 터지자 갑자기 길거리에서 잡혀 마차에 실려 병영에 끌려갔고 원인도 모른 채 그 날로 독일제국 병사가 되고 말았다. 당시 독일엔 [총동원령]이 내려지면, 아무 청년이나 징병관들이 길거리에서 잡아 군대에 보내도 되는 법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돌려보내지지만, 그런 경우는 천연기념물보다 더 희소한 경우였다.

후일에 내가 자진입대했단 말은 순 엉터리다... 오스트리아 징병도 기피했던 내가 미쳤다고 독일 병영엔 자진해 갔겠는가?~


전쟁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아니 지옥보다 더한 곳이었다.
맨날 하늘에서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우웅하는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나면 모두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옆사람들이 하늘의 총격에 핏방울을 뿌리며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빳빳한 시체 사이에서 참호나 길에 엎드려 있자면 내가 미쳐버릴 듯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 당시엔 정말 나도 미친 게 확실했다. 위험한 연락병 임무를 자청해 맡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시체들 사이에 납작 항상 엎드려 있는 게 너무 짜증이 나서]였지... 내가 태어난 나라도 아닌 독일을 위한 충성심은 결코 아니었다. 차라리 죽더라도,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맘대로 달려나보다가 죽는 게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한 임무 때문일까?~ 난 죽을 고빌 수십번이나 넘겼다. 죽은 동료들 시체 옆에 부상을 당해 몇 번 고꾸라질 때마다 차라리 이때 죽어서 영원한 안식을 찾고 싶었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독가스와 포탄에 한번씩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을 때, 맨날 죽어나가는 동료들의 비명과 썩어가는 냄새와 피냄새... 그건 정말 고역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그래도 나가겠다는 생각 때문에 야전병원에서 일찍 퇴원한 것이었다.

급기야 전쟁이 끝나기 한달 전엔 독가스가 눈에 들어가 한동안 장님 신세까지 됐었다.
내가 입원하고 있던 야전병원에서, [독일이 패망했다]는 보도를 들었을 때 오히려 안도감까지 들었다. 오히려 감격의 눈물이 [독일이 져서 흘리는 눈물] 이라고 후대엔 와전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의 사정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해외 식민지는 다 빼앗겼고, 아프리카 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태평양 것은 일본과 호주가 나눠가졌다고 한다.

더구나, 1320억 마르크라는 엄청난 배상금에 깔린 독일 경제는 그야말로 블랙홀의 밑바닥같은 심각한 무게에 눌려 독일은 영원히 소생할 수 없을 듯 싶었다.

독일이 배상금을 제대로 안 갚으니까, 프랑스는 급기야 독일경제의 심장인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하고 기계를 뜯어가고 석탄을 캐갔다. 배상금을 현물로 받아가겠단 심보였다.

원래부터도 전쟁 패망 때문에 식민지와 영토를 잃고, 많은 인명과 시설을 상실해 엉망이었는데 이런 일까지 당하니 [독일돈은 휴지보다 못한 초인플레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야말로 빵 한덩이에 400억 마르크란 천문학적 시대로...


이때, 나는 전쟁 후에 [국가사회당] 이란 제대군인 우빨들이 만든 한 초라한 정당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들의 추대로 당수가 되었다.

나는 이러다간, 독일이 멸망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이래서 난 무정부시대를 극복하고 다시금 독일을 일으켜보잔 생각 때문에 우빨들의 집합도시 같은 뮌헨에서 그들을 규합해 [맥주홀 폭동]을 일으켰다. 무솔리니마냥 수도로 진군해 아노미 상태의 나라를 일으키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물론 반란은 아니라고, 전직 수상 힌덴부르크의 승인을 받아서 일으킨 정변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독일이 지리멸렬하다지만 역시 썩어도 준치인가?

나는 어설픈 정변을 일으킨지 불과 며칠만에 독일 정부군에 진압당하고 난 그대로 잡혀 감옥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을까? 이미 이때는 수시로 폭동과 쿠데타가 어느 지역에서든 일어나는 형편인지라 나를 역적으로 특별히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때리기도 쉽지 않았고, 또 나랄 일으키겠다는 나의 의도가 오히려 동정표를 얻어 독일사람들 사이에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이다...

나는 10년형을 받았으나, 실제로는 고작 1년도 안 살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감옥에서 나오자, 오히려 날 좋아하고 크게 영웅시하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불어나 있었다. 이미 세계대전시 무슨 전쟁을 오락처럼 즐기고 환호하는 군국주의 정신의 독일인들은, 다시 강력한 독일을 만들고 싶어 정변을 했다는 나를 오히려 크게 반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감옥살이를 한 것이 오히려 영웅의 핍박으로 인정되어, 그 후로 국가사회당의 당세는 나의 인기를 먹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그 후, 갑자기 당세를 불린 나의 정당인 국가사회당은 [나치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차츰 독일 국회의사당에 무려 우리 당원을 열명 넘게 배출시키는 등 각고의 발전을 이뤘다.

더욱이 크게 행운으로 작용한 건 바로 갑자기 생긴 ‘경제대공황’ 이었다...


세계 경제의 4할을 꿍친 미국에서 갑자기 주가가 대폭락하여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막 쓰러지자, 이 독일경제 전반에 절반 넘는 차관을 주었던 미국자본이 다 빠져나가 독일기업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6백만이 넘는 실업자가 나타나 노숙자 천지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독일국민들은 [과거 초인플레 시대 재현]이 두려워졌는지, 민주적인 정당보단 비민주적이라도 좋으니 경제를 안정시킬 강력하고 국력을 신장시킬 우빨형 정당에다 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나치당이 그런 조건에 딱 맞는 정당이었다.

나는 이때, 독일국민들이 우려하고 염려했던 그 부분을 강조하며 [경제대공황으로 고통받는 서민들과 독일경제와 국력을 일으킬 방안]에 대해 알기 쉽고 명확하게 연설하면서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였다.


“공산주의를 믿지 마십시오. 벌써 십년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8백만이 굶어죽은 일 잊었습니까? 공산주의의 골고루란, 골고루 못 살고 골고루 굶어죽자는 뜻일 뿐입니다.”

“우리 독일은 물론, 전 세계가 빈곤해진 건 악덕 자본가들의 무한경쟁과 유태인들의 부동산 및 증권투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과잉생산으로 산업균형이 무너진 탓입니다.”

“독일이 공황을 극복하고 다시 강대국 선진국이 되는 건 하나 뿐, 악질부자 유태인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재산을 뺏어 국가산업을 벌이고, 힘으로 세계에 뻗어나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를 뺏는 길 뿐입니다. 저들이 과거 우리 식민지를 뺏었듯!~”


나의 이런 시원시원한 독일국민들의 가려운 데를 알아서 긁어주는 듯한 연설에, 국민들은 막 나와 나치정당에 표를 던졌고, 급기야는 1933년엔 우리 당이 독일 1당이 되었고 금방 과반수를 차지했어.

결국 나는 독일 수상이 되었고, 독일은 나치의 나라가 되었지.


“독일국민이 나를 절대적으로 따르게 하는 건 ‘실력’ 뿐~~ 내 실력으로 독일국력을 크게 오르게 하고, 독일 경제를 일으키는 걸 현실로 보여주는 길 뿐이다.”


나는 케인즈 경제방법을 맨 먼저 도입한 정치가가 되었어.


기업이 망하거나 인력이 불필요해 내버려진 실업자들을 막 고용해 고속도로를 닦고, 공장을 짓고 독일이 다시 강대국이 되려면 필요한 군수공장이나 군대를 크게 늘렸지.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내에 있던 악질부자인 유태인들 재산을 뺏지 않을 수 없었어.

결국 나와 우리 정당의 유태인 탄압의 진정한 이유는 바로 이거였지... 독일을 일으킬 자금확보를 위해선 그렇잖아도 악질부자로 미움받던 유태인들 재산을 뺏고 그들을 죽이거나 멀리 추방하는 방법이 가장 쉽고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었기에~


하지만?... 결국 그것도 몇 년이지, 언젠가는 급기야 자금이 바닥나더군.

결국, 나는 독일로 하여금 대외침략을 하여 해외영토를 넓히는 방법 뿐이었어.

실업자들의 일자리를 마련하느라 너무나 많은 공공사업(공장과 도로 건설)과 군대팽창(군인과 군수산업 투자)를 하느라 국고를 완벽하게 탕진해버린 독일로서는, 전쟁을 벌여 해외에서 약탈품을 왕창 챙기지 않는 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이 와버렸기에...

전쟁을 안 벌이면 정부가 자금부족으로 도산할 판이니 그럴 수밖에...

나는 우선 내 고향나라인 오스트리아를 병합해 독일영토로 만들고, 다음엔 체코의 수테텐 지역을 영프와 협상해 병합하고 급기야는 체코 전부를 먹어버렸지...

그런 후, 이번엔 폴란드로 진격했어. 폴란드엔 돈많은 유태인들이 그 나라 재산의 8할을 가진 판이고 그 놈들 재산을 뺏자면 절대 필요한 나라였기 때문이야. 또, 가장 만만한 나라이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이기도 했고...

하지만, 급기야 폴란드까지 집어먹자 영국 프랑스도 더 이상은 참지 않더군. 당장 선전포고를 했어. 이때만은 정말 나라도 움찔하더군.

하지만 영프는 바보들이고 겁쟁이들이었어. 그들은 저희 영토까지 전쟁터로 만들 지난 번 세계대전이 두려웠는지 바로 서쪽에서 지상군으로 침략하지 않고 마지노선 너머에서 포만 쏘아대더군.

그러는 동안에 폴란드를 모두 먹어치운 우리 군대는 바로 그 다음해에 모든 군사를 몰아 프랑스로 진격했어. 벨기에의 마지노선 못지 않다고 자랑하던 에반에셀 요새는 불과 38명의 공수부대원들이 천장에 글라이더와 낙하산으로 상륙해 막 수류탄과 화염방사기를 통풍구에 던져넣으니 맥도 못 추고 함락당하더군. 설혹 마지노선으로 돌진했어도, 이런 방법을 쓰면 금새 함락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벨기에를 함락시킨 우리 독일군은 바로 프랑스로 진격! 이렇게 신속하게 벨기에를 통과하지 못할 거라 여긴 프랑스군은 뒤통수를 얻어맞아 바로 괴멸당하더군. 바로 우리는 어렵잖게 프랑스를 점령하고 프랑스는 향후 4년간 우리 식민지가 되고 말았지.

바로 어젯 밤 나와 결혼식을 올린 에바브라운은 파리가 우리 손에 들어왔단 소리에 기쁨의 탄성을 맨날 지르면서, 그간 몇 년간은 파리에서 살다시피 했지. 여자들의 영원한 로망의 도시인 파리에서 말야.


그 후, 난 영국에 [이제 너네 승산이 없으니 전쟁 그만 하자. 영국도 앵글로섹슨 게르만민족, 우리 독일은 고트 게르만족이니 같은 게르만족끼리 동족상잔은 싫다. 그만 강화하면 너희 영국엔 전혀 손대지 않겠다]고 제의했지만, 그 놈의 처칠이란 미친 놈은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어.

결국, 나는 영국의 세배가 넘는 공군력으로 막 런던과 코벤트리, 그밖의 영국지역 폭격을 해댔지만 그래도 그 폭격을 맞으면서도 영국은 잘만 버텼어. 유보트들에게도 영국으로 가는 배는 사정없이 어뢰로 격침시키라고 했지. 항구도시도 어뢰로 공격하고...

하지만 영국놈들의 저 기막힌 참을성은 정말 본받을만 했어. 결국 나는 손을 들고 말았지. 우리 공군력의 절반 이상을 저 놈들에게 격추당했고, 일급 조종사는 다 그때 영국과의 항공전투 때 잃고 말았지.

결국 나는 영국보단 동쪽의 자원 많고 땅이 무지 넓은 러시아를 점령해야 석유와 곡식을 확보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일단 동쪽으로 모든 병력을 돌렸어.

첨엔 좋았지... 러시아 국토의 5분의 1을 석권하고, 병력의 절반 이상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았어. 하지만, 러시아는 원체 인구와 영토가 많은 나라라 이걸로 그들의 숨이 끊어지진 않았어.

어느 순간인가... 급기야 너무나 넓은 영토와 겨울의 매서운 동장군이 우리 독일군의 발목을 꽉 잡게 되었지. 그리고, 스탈린그라드란 도시에선 적군이 아니라 추위에 죽은 병사들이 더 많아 결국 총사령관 파울루스는 내 명령도 거부하고 소련군에 투항해버렸지.

잘 보니까, 우크라이나에서부턴 러시아군이 퇴각한 건 [우리보다 약해서가 아니라, 우릴 더욱 깊숙이 끌어들여 포위섬멸하자는 작전상 후퇴]였던 거 같아. 아무리 독일군이 많다고 그 넓은 러시아 국토에선 점점이밖에 더 되겠어? 어느 선만 끊으면 추위와 기아에 모두 당하는 거지... 멀리 저 지구 반대편의 내가 좋아하는 반도국 나라 한국(실제로 그가 한국빠돌이였단 건 정말이다)이란 곳의 을지문덕 장군의 고사를 언제 러시아 놈들이 배웠을까 몰라??

거기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우리 독일군은 막 밀리기 시작했어. 엄밀하게 말하면 적군보단 자연의 힘에 밀리기 시작한 거지. 나도 참. 나폴레옹의 고사를 알았으면서 왜 그대로 답습했을까? 욕심이 생기면 알면서도 그대로 흉내낸다더니 나도 역시 사람인가??

인생의 한계를 모르고 너무 지나친 욕심의 대가는 엄청났어... 실제로 그 후론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어. 급기야 러시아쪽에서도 자꾸 밀리다가, 어느 날엔가는 태풍이 치는 날에 갑자기 미영연합군 놈들이 노르망디에 상륙해 서유럽 주둔 우리 군대는 다 괴멸당했어.

그 후, 자꾸 동서에서 협공당해 밀리기만 한 끝에 급기야는 우리 영토는 이젠 내가 숨어있는 이 베를린 지역 수백킬로 일대밖에 남지 않은 처량한 신세가 된 거지...

대체 어디에서 잘못된 거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첨부터가 아니었을까?

전쟁 초반의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무작정 신이 내편이라고 믿었던 어리석었던 나만의 자기특별주의의 정신병...!! 그것이 바로 패인이었어.

그러고 보니, 4년 전에 영국으로 도망친 나의 제갈량 헤스가 도망치기 직전 소련침공을 반대하면서 나에게 했던 소리가 이제야 생각나.

“인생은 한계가 중요합니다. 그 한계가 어디까진지를 스스로 깨닫고 거기서 단호히 그만두는 게 최고의 지혜입니다. 욕심과 만용이야말로 그걸 가리는 안개입니다. 우리 독일로선 지금이 바로 그때일 겁니다. 소련공격은 그만 두고, 꼭 그들과의 싸움을 반드시 해야 한다면 어떻게든 영국과의 전쟁은 이기건 지건 매듭짓고 마친 후에 해야만 합니다.”

그때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게 이제 보니 천추의 한이었어...
하지만 이젠 때는 이미 늦었어... 뒤늦은 후회는 안하는 것만 못하지.

이제는 정말 절망과 종말의 암흑만이 남은 상태!~


내 애견 블론디는 이미 어젯밤에 독약을 먹여 죽여 싸늘한 주검으로 내 옆에 뻗어있다.

그 남은 독약은 이제야 백년가약을 맺은 아내인 에바가 마셨다.

“아돌프, 제가 먼저 갈게요...”

바로 조금 전에 에바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이제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제 모든 회상이 끝난 지금, 나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도는 길죽한 물건을 내 관자놀이에 갖다 댄다.

순간, 나의 이승의 시간은 영원히 멎고 지하호엔 매캐한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잠시 후... 내 지하호 방으로 내 운전사와 두 명의 친위대원이 들어온다. 내 운전사가 두 명의 대원에게 명령하는 소리가 멀리 저 세상으로 가는 나의 영혼에 마지막으로 아련하게 들려온다.


[각하와 영부인의 시신을 바깥으로 옮겨라. 그리고 적군들에게 넘겨져 조롱을 당하지 않도록 즉시 소각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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